베트남 심층 여행 시리즈 3
9월 2일은 베트남 국경일로, 1945년 일본이 항복하면서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황제 바오 다이를 폐위하였다. 9월 2일, 호치민이 이끄는 베트민이 베트남 북부 하노이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호치민이 '독립 선언문'을 발표하여 베트남 민주 공화국(즉 '북베트남')의 수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당시 베트남은 실제로 패전국인 프랑스와 영국에 의해 각각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이 관리되고 있었으며, 일본이 사이공(현재의 호치민 시)에서 항복을 받아들인 것은 영국 동남아사령부가 받아들였다. 일본이 베트남을 점령하기 전에 원래 프랑스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이후 영국은 남베트남을 프랑스에 넘겨주고 아시아 식민지에서의 지원을 대가로 받았다. 그러나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 후 국력과 병력이 식민지 지배를 지탱하기 어려웠고, 베트민은 중공과 소련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디엔비엔푸 전투 후 프랑스는 베트남에서 식민지 지배를 사실상 포기했다. 이때 북베트남은 베트민에 의해 확고하게 통제되었지만, 영미의 영향과 대국 간의 게임으로 인해 결국 베트남은 북부와 남부로 나뉘어졌고, 남베트남의 정치 중심지는 현재의 호치민 시(당시의 사이공)였다.
오늘은 통일궁을 방문했다. 통일궁의 이름이 변화하면서 통일궁-독립궁-노로돔궁으로 불렸으며, 1869년 프랑스 총독에 의해 건설되었다. 이름의 변화를 통해 각 시대의 기능을 알 수 있으며, 승자와 패자의 역사는 변하지 않는다. 오늘날 그것은 단지 관람용으로 남아있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는 모습, 정치 권력의 술수, 크고 작은 국가들 간의 게임, 그리고 운명이 다한 생명의 걱정이 있었다.
입장료는 6.5만동(약 20위안)이며, 나는 설명기를 추가하여 총 15.5만동을 지불했다. 현장에는 가이드 서비스가 없었고, 중국어 가이드도 없었다(이후 방문한 두 개의 역사 박물관에서는 베트남어 가이드를 볼 수 있었지만 현장에는 중국어 가이드가 없었다). 오늘은 국경일이라 사람이 많을까봐 걱정했지만, 중국에서 유학한 베트남 학생이 나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중국만큼 사람이 많지 않다. 8시에 개장하지만 나는 7시 30분에 도착했고, 사람이 많지 않았다. 중국의 공원만큼 사람이 많지 않았고, 매표소가 열리자마자 줄을 선 사람도 20~30명 정도였다. 나가는 시점에 사람이 좀 더 많아졌지만, 결코 붐비지는 않았고, 많은 서양인 단체가 있었다. 이후 방문한 역사 박물관은 더욱 한산했다.
나는 그것을 네 가지 기능 구역으로 나누었다. 사무 구역: 내각실, 연회장, 접견실, 대통령과 부통령 사무실이 좌우로 나뉘어 있고, 국정실, 도서실이 있다. 여가 구역: 영화관과 당구 및 피아노가 있다. 생활 구역: 식당과 침실이 있다. 지하실: 대통령의 전시 사무 및 침대 구역, 정보실과 전쟁 상황 분석실, 임시 라디오 방이 있다. 매우 화려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권력 중심에 어울리는 세련됨이 있다.
역사적인 랜드마크! 너무 커서 방문할 가치가 있습니다. 베트남 역사에 대해 많이 배우십시오.
호치민 도심에 위치한 큰 정원에 있는 역사적인 궁전. 이곳에서 도시의 오랜 역사와 당시의 수많은 변화를 연구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 건물은 전시된 모든 객실과 마찬가지로 손상되지 않았습니다. 대기열이 빠르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티켓을 사전 주문할 필요가 없습니다. 메인 기념품 가게가 입구에 있습니다
밤이 되면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변에 식당, 환전소, 바 등등 가게가 많고 야경이 이뻐서 사진 찍기 좋습니다. 광장에 있으면 잡상인이 많이 다가옵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식민 통치를 위해 건설한 건물입니다.월남이 패망때까지 대통령궁으로 사용되었던 역사적인 건물입니다. 상당히 규모도 크고 호화롭네요.근처에 사이공 동물원 전쟁박물관, 우체국, 핑크 성당이 가까이에 있어서 여행하시기 편합니다.
호치민 오면 꼭 들러봐야될 장소 중 하나죠도심에서 잠깐 둘러보기 좋아요
호치민시의 중심에 있어 접근성도 좋고 유익한장소입니다. 한때 한국보다 부유했었던 베트남공화국(남베트남) 대통령이 지냈던곳을 보실 수 있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