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송 고을에서 환탐을 보며, 시골의 그리움과 송조의 운율을 간직하다!
환탐 마을에는 고적이 많으며, 명청시대의 고건축물이 약 3만 평방미터에 달한다. 레오양팡(환탐 학당 구지), 무본당, 이교서욱은 모두 절강성급 문화재 보호 단위로 지정되었다.
이교서욱은 소산에 현존하는 유일한 청대 서욱으로, 환탐의 학문을 존중하는 실제적인 모습이다. 인제교와 상무교 사이에 위치해 있어 이 이름이 붙었다. 이교서욱은 원래 전조의 무본당 사교였으나, 후에 환탐망족에게 개방되었다.
'평민 도수' 탕수첨은 이교서욱에서 학문을 배웠다. 그는 청말민초의 실업가이자 늦은 청기의 입헌파 지도자로, 후에 절강 도서관을 건설하고 항주성역의 위치를 결정하였으며, 환탐에서 중국 첫 세대 현대 초등학교의 모델을 창설하였다.
레오양팡은 전조의 후손인 전문예가 민국 시대에 건설했으며, 중서합벽의 전형이다. 동시에 환탐 학당을 건설하고,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후에 환탐 향정부, 환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이 레오양팡을 계승하였다.
레오양팡 1층은 마을사관으로, 환탐 마을의 역사와 오의정신을 전시하고 있다. 2층은 명인향현관으로, 강서명환사의 전대년, 자선가 전문예, 항영민족영웅 갈운비, 평민도수 탕수첨, 홍색의사 전증기, 첫 세대 비행기 설계자 전지화, 항역원사 이란관, 조류전문가 전증탁 등이 있다.
무본당은 백벽대와로, 당시 진강단두지사였던 전조가 청조 도광년간에 착공하였다. 전조는 청렴정직하여 이홍장에게 '이익을 보아도 추구하지 않고, 해를 보아도 피하지 않는다'라고 칭송받았다.
무본당은 취산만을 뒤로하고 환탐계를 마주하며, 청전소와마두벽, 회랑에는 화격창이 걸려 있어, 어디에서나 대문의 품격을 드러낸다. 당명은 '군자는 본을 섬기며, 본이 세워지면 도가 생긴다'에서 나왔으며, 당시 소소일대에서 가장 큰 문이었다.
환탐 전씨는 '삼사문제'로, 전씨종사는 대사공가모로, 시작전조 전직관 '대사공'을 총사비액으로 삼았다. 통칭 '총사당', 당호 '경무당'. 북쪽을 향해 총 3진 3간이다.
전열은 송고종 남도를 보호함으로써 공을 받아 사공이 되었다. 그는 개혁가로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였으며, 더욱이 후세에 깊은 영향을 미친 문학가, 시부가였다. 그는 강직하고 충실하며,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충언과 정직한 비판을 자신의 임무로 여겼다.
범중연은 그의 묘지명을 썼고, 사마광은 신도비를 만들었으며, 소설은 그의 주의를 자이로 비교할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 전성은 항금장군으로, 녹국공으로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