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내려 밝은 날을 물들이다.

회랑 아래서 선음(禅音)을 들으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흰 벽과 검은 기와는 수묵화처럼 번져가고, 청석판 길은 은은한 빛을 띠며 고요함을 더한다. 빗줄기는 처마 끝의 풍경을 꿰어내어, 연못에 떨어져 물고기의 비늘을 놀라게 한다. 회랑을 지나가는 바람은, 목서 향기와 오래된 나무의 맑은 기운을 섞어, 조각 창살을 넘어 퍼져간다. 난간에 기대어 비가 비스듬히 짜내는 선을 바라보니, 고택이 마치 흐릿한 시의 한 권으로 수놓아진 듯하다. 우산 끝에서 회전하며 떨어지는 빗방울 속에는, 날아오른 처마 끝과 등불의 은은한 빛이 비친다. 발걸음이 빈 회랑을 울릴 때, 마치 명청 시대의 어느 비 오는 날과 재회한 듯한 느낌이 든다. 맑은 날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 지금의 관당(觀堂)— 비는 자연이 만든 커튼이고, 고요함은 가장 좋은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