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 수묵화처럼 아름다운 천년의 노래
1. 짙은 안개에 젖은 시후: 한 폭의 그림 같은 호수와 도시
아침 안개가 걷히기 전, 시후는 이미 얇은 비단纱(사)를 걸친 듯한 모습입니다. 돤치아오(断桥)에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발밑의 푸른 돌판이 이슬에 젖어 마치 '백사전'의 선율 속에 있는 듯합니다. 구산(孤山) 북쪽 기슭의 팡허팅(放鹤亭) 옆에는 린푸(林逋)의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았다(梅妻鹤子)"는 은일한 풍모가 여전히 이끼 자국이 얼룩진 기둥에 응결되어 있습니다. 쑤디춘샤오(苏堤春晓)에는 6개의 아치형 다리가 푸른 옥비녀처럼 푸른 물결에 비스듬히 꽂혀 있고, 수양버들이 물에 닿아 그림을 그리는 듯하니, 바로 쑤스(苏轼)가 묘사한 "연하게 화장하든 짙게 화장하든 모두 제격이다(淡妆浓抹总相宜)"라는 천고의 주석입니다.
눈이 온 후 날이 개면 유람선을 타고 후신팅(湖心亭)으로 가야 합니다. 뱃전 창밖으로 레이펑탑(雷峰塔)의 금빛 지붕이 잔설에 비치고, 보석산(宝石山)의 바오추탑(保俶塔)이 호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으니, 마치 오월국(吴越国)의 역사가 반짝이는 물결 속에서 흐르는 듯합니다. 땅거미가 지면 창차오궁위안(长桥公园)의 구불구불한 회랑에 궁등이 켜지고, 난핑완중(南屏晚钟)이 저녁 안개를 뚫고 울려 퍼지며 백로를 놀라게 하여 싼탄인위에(三潭印月) 위를 스쳐 지나가니, 이 순간이야말로 "항저우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절반은 이 호수 때문이리라(未能抛得杭州去,一半勾留是此湖)"라는 애절함을 알 수 있습니다.
2. 링인사의 선종 자취: 천 년의 범음으로 속세의 번뇌를 씻다
산문에 들어서면 차가운 샘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천년 된 단풍나무 그늘 아래에는 당나라 다성 육우(陆羽)가 샘물을 끓여 차를 논했다는 석안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대웅보전 안에는 24.8m의 석가모니 좌상이 눈을 내리깔고 미소를 머금고 있으며, 전각 모퉁이의 풍경 소리와 염불 소리가 어우러지고, 향이 피어오르는 가운데 오대 오월국의 화려한 조각 건물은 "동남 불국(东南佛国)"의 옛 영화를 이야기합니다.
푸른 돌길을 따라 페이라이펑(飞来峰)에 오르면 북송 시대 포대화상 미륵보살상이 배를 드러내고 웃고, 원나라 다문천왕의 옷자락이 바람에 흩날립니다. 마애석각 사이로 한 줄기 햇빛이 비치니, 원나라 시인 사두라(萨都剌)의 "스님의 낮잠에서 깨어나니, 창가의 대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네(僧房午梦觉,窗影竹依依)"라는 시적 정취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다가옵니다. 섣달 초파일이 되면 절에서 팥죽을 끓이는 솥에서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신도들이 그릇을 들고 조용히 기다리니, 범패 소리 속에는 인간 세상의 온기가 가득합니다.
3. 미각의 화폭: 남송의 풍류가 음식에 깃들다
허팡지에(河坊街)의 딩성가오(定胜糕) 가게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가운데 쌀의 달콤한 향기가 풍겨옵니다. 노련한 장인이 찹쌀가루를 배나무 틀에 채워 넣고 설탕에 절인 계화와 잣을 얹으니, 남송 군인들의 군량이 이제는 여행객들의 입에서 오농 연어(吴侬软语)로 변합니다. 쿠이위안관(奎元馆)의 샤바오샨몐(虾爆鳝面)은 가물치를 호박색으로 튀겨 손으로 깐 민물 새우와 함께 볶아 국수를 삶아 고명을 얹으니, 바로 '몽량록(梦粱录)'에 나오는 "은사냉도(银丝冷淘)"의 살아있는 화석입니다.
밤이 되면 승리하(胜利河) 음식 거리에서 거지닭(叫花鸡)을 진흙 속에서 6시간 동안 구워 딱딱한 껍질을 깨면 연잎의 은은한 향기가 산야의 기운을 감쌉니다. 시후 국빈관(西湖国宾馆)의 룽징샤런(龙井虾仁)은 청명절 전에 딴 찻잎이 뜨거운 기름 속에서 깃발처럼 펼쳐지고, 새우는 옥처럼 윤기가 흐르니, 젓가락으로 한 입 맛보면 봄물이 혀끝을 적십니다. 가장 묘미는 후파오취안(虎跑泉)으로 우려낸 주취훙메이(九曲红梅)로, 찻잎이 샘물 속에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 마치 육우가 '다경(茶经)'에 "첸탕(钱塘) 천축(天竺) 링인(灵隐) 두 절에서 차가 생산된다(钱塘天竺灵隐二寺产茶)"라고 쓴 묵적이 아직 마르지 않은 듯합니다.
4. 고아한 삶: 물가에서 선을 들으며 밤은 깊어 가다
시쯔후 사계절 호텔(西子湖四季酒店)의 파윈농(法云弄) 옛 저택 담벼락에는 능소화가 가득하고, 조각된 나무 창문을 열면 바로 차밭입니다. 땅거미가 지면 종업원이 청자 그릇에 담긴 연근 가루를 가져다주고, 취위안펑허(曲院风荷) 연잎으로 감싼 딩성가오(定胜糕)를 곁들이니, 마치 '무림구사(武林旧事)' 속의 린안성(临安城)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온 듯합니다. 칭즈우(青芝坞)의 시샤샤오주(夕霞小筑)는 원래 건륭 연간의 포박도원(抱朴道院)이었으며, 테라스에서는 바오추탑(保俶塔)의 그림자를 조망할 수 있고, 아침에 일어나면 산안개가 하얀 벽과 검은 기와를 덮으니, 마치 수묵화가 화선지에 번지는 듯합니다.
현대적인 시적 정취를 찾고 싶다면, 윈허(运河)변의 치푸리 호텔(契弗利酒店)은 민국 시대 공장을 강철 숲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로프트 객실의 통유리창 밖으로는 화물선이 뱃고동을 울리며 궁천차오(拱宸桥)를 지나가니, 산업풍의 냉철함과 윈허의 따뜻함이 이곳에서 기묘하게 공존합니다. 만주에롱(满觉陇)의 차인 민박(茶隐民宿)에서는 주인이 매일 아침 이슬이 맺힌 계화를 따서 손님에게 계화꿀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고, 도자기에 봉인된 것은 꽃향기뿐만 아니라 산속 생활의 호박빛 시간입니다.
5. 숨겨진 여행 경로: 시공간을 초월하는 12시진(十二时辰)
이른 아침 6시, 양공디(杨公堤)의 오동나무 터널에는 아직 인적이 드물고, 공유 자전거를 타고 마오자부(茅家埠)의 갈대밭을 스쳐 지나가면 백로가 놀라 검푸른 먼 산을 가로지릅니다. 정오에는 수상 버스를 타고 윈허(运河)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 궁천차오(拱宸桥) 서쪽 기슭의 도검박물관(刀剪剑博物馆)에서 장샤오취안(张小泉) 가위가 담금질 속에서 어떻게 백년 장인의 혼을 응축하는지 살펴봅니다. 황혼이 되면 청황거(城隍阁)에 올라 석양이 첸탕강(钱塘江) 다리에 금빛을 입히는 모습을 보고, 류허탑(六和塔) 풍경 소리 속에서 첸탕강 조수가 천년의 약속을 향해 달려갑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중국미술학원(中国美术学院) 샹산(象山) 캠퍼스의 다져진 흙벽에서 풀과 나무의 향기가 풍겨 나오고, 왕수(王澍)가 설계한 건축물이 산안개 속에서 어렴풋이 나타나며, 회랑이 꺾이는 곳에서 학생들이 우산을 들고 사생하는 모습이 보이니, 찰나의 순간에 '부춘산거도(富春山居图)'가 빗속에서 되살아납니다. 깊은 밤의 난산루(南山路)에서는 중국미술학원 담벼락 밖의 담쟁이덩굴이 조명 아래에서 비취 폭포처럼 흘러내리고, 술집에서는 재즈 음악과 남송 어가(南宋御街)의 경고 소리가 뒤섞여 고금의 시공간이 이곳에서 기묘하게 겹쳐집니다.
영원한 산수의 이야기
항저우의 아름다움은 쑤둥포(苏东坡)가 시후(西湖)를 준설한 죽제에, 장다이(张岱) 야항선의 술통에, 그리고 평범한 골목길 아주머니가 타주는 계화 룽징차(桂花龙井茶)에 있습니다. 이 도시는 살아있는 '청명상하도(清明上河图)'와 같아서, 모든 거리 모퉁이에는 펼쳐진 경전이 숨겨져 있고, 모든 차 연기에는 아직 쓰여지지 않은 시구가 흩날립니다. 당신이 시링인사(西泠印社)의 이끼 낀 돌계단을 밟고, 후칭위탕(胡庆余堂)의 주칠 약장을 어루만지면, 항저우는 유람하는 곳이 아니라, 마치 느린 사(词) 한 곡을 읽듯이 오감으로 세세하게 음미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