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벽화 하나만으로도 일부러 기산에 가볼 만하다
마촌 벽돌무덤을 본 후 바로 옆의 고봉 위에는 국보급 사찰인 청룡사가 숨겨져 있다. 청룡사는 당 고종 용숙 2년(서기 662년)에 창건된 관영 사찰로, 원 대덕 7년 하동 대지진을 겪은 후 여러 차례 중수되어 오늘날까지 보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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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청룡사는 북향 남향으로 앞뒤 두 개의 마당으로 나뉘며, 사찰 내 현존 건축물 중 허전, 대웅보전, 이전은 원대의 유구이고 나머지는 명대에 재건된 것이다. 그러나 이 건축물들보다 청룡사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바로 벽화이다. 청룡사의 허전, 대전, 가람전에는 벽화가 보존되어 있는데, 그중 허전의 벽화가 가장 뛰어나다. 벽화가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청룡사가 일찍이 마촌 학당으로 사용되어 여러 재난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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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이 자자한 영락궁 벽화와 비교하면, 청룡사 벽화는 은둔자와 같다. 시끄러운 관광객이 없고, 벽면 가득 바람이 불며 600년을 넘어선 예술의 정수가 조용히 자신을 이해할 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쉽게도 내가 갔을 때는 청룡사 대수리가 아직 끝나지 않아 사진은 모두 운성 박물관에서 촬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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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사 벽화의 가장 큰 특징은 유교, 불교, 도교 삼교가 합일된 수륙화로, 원명시대 민간 신앙의 융합성을 반영한다. 가장 유명한 허전 벽화를 예로 들면, 서벽에는 ‘삼세불’과 ‘예불도’가 그려져 있어 장면이 웅장하고 엄숙하다. 동벽은 누수로 인해 많은 내용이 식별 불가능하지만, 여전히 도교 신격 체계가 주를 이루며 왕선성모, 천유부원수, 산지가 대장, 광야 대장군, 강하회제신, 풍우뇌전신, 오악제군, 이십팔수성군 등이 등장한다. 인물들의 옷자락이 흩날리며 신선한 도골의 풍모가 짙다.
남벽과 북벽은 비교적 혼합되어 있으며, 주로 불교의 팔대명왕, 십전염왕, 십육나한 등의 형상을 그렸고, 선이 굳세고 힘차며 형상이 위엄 있어 시각적 충격이 크다. 그러나 남벽 하단을 자세히 보면 유교 인물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자료에 따르면 총 8조 41명의 속세 인물이 있으며, 그중 쉽게 식별되는 인물이 10여 명에 달한다. 예를 들어 대당 개원성세를 창립한 당태종 이세민, 천하 백성을 교화하고 72제자를 양성한 공자, 지략이 뛰어나 유비를 도와 한실을 복구한 제갈량, 관우, 장비, 문천상, 소무, 순제의 부인 아황, 여영 등이 있다. 비록 차지하는 면적은 크지 않지만, 강렬한 개성적 특징으로 불교와 도교 인물이 가득한 전체 벽화 중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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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허전 벽화는 20세기 20년대에 도난당해 판매되었으나, 벽화가 절단되어 운송 중에 주민들에게 발견되어 일부는 이미 운반되어 행방이 묘연하지만 대부분 회수되어 마을 주민들이 수리하였다. 그래서 지금 벽화에는 절단된 칼자국과 수리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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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기산 청룡사
🎫입장료 | 20위안
⛳주소 | 산서성 운성시 기산현 마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