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로 만발한 영주 부석사 산책
부석사(浮石寺)는 신라 문무왕 의상대사가 창건하여 화엄교학을 펼친 최초의 사찰로 알려져 있다.
부석사에는 국보 제17호인 무량수전을 비롯하여 국보 제19호인 부석사 조사당, 보물 제255호 부석사 당간지주, 보물 제249호 부석사 삼층석탑, 보물 제735호 부석사 고려각판 등 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부석사(浮石寺)'라 이름하게 된 이유는 절의 서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지 않고 공중으로 붕 떠 있어 뜬 돌이라 한데서 유래되었다 한다. 고려시대에는 '선달사(善達寺)' 혹은 '흥교사(興敎寺)'라 불리웠다.
송고승전(宋高僧傳)에 의하면 의상은 20세 때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으며 중국의 등주에 머무를 때 군장의 딸인 선묘(善妙)라는 아가씨가 의상을 몹시 사모하였다. 그러나 전혀 흔들리지 않는 의상의 마음을 붙들지 못하자 선묘는 자신도 부처님의 불제자가 되어 의상을 항상 모실 수 있도록 기원하였다고 한다.
의상이 유학을 마친 뒤 배를 타고 신라로 떠나자 선묘는 바다에 몸을 던져 한 마리의 용이 되었고, 용이 된 선묘는 의상이 탄 배를 보호하여 무사히 신라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의상이 귀국하여 영주 봉황산에 절을 지으려 할 때 먼저 이곳에 자리잡고 있던 도적들이 방해하는 것을 보고 조화를 부려 큰 돌을 세 번이나 공주에 뜨게 하였다.
이에 도적의 무리들이 놀라서 모두 흩어지니 선묘는 석룡(石龍)이 되어 이곳에 모을 눕혀 그 위에 절을 짓도록 하였다.
의상은 선묘가 변한 큰 바위 위에 절을 창건하고 '뜬 돌' 위에 절을 지었다는 뜻으로 부석사라 이름하였는데, 경내의 아미타불 바로 밑 부분이 석룡의 머리 부분이며 석등 아래쪽이 석룡의 꼬리 부분이라고 한다.
얼마나 사모했으면 그렇게 자신을 바쳐 용으로 변신하여서도 지킬 수 있었을까?
부석사에 얽힌 유래와 뜬 돌을 다시보니, 온통 꽃으로 지천인 이 계절과 한 여인의 숭고한 사랑과 희생이 사찰을 따라 올라가는 산책길 내내 숙연하게 만든다. #커플끼리 #데이트코스 #마음산책 #명소탐방 #세계문화유산
봄여름가을겨울 사시사철 아름다운 부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