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엘름그린 & 드라그셋
#실내데이트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전시장 입구부터 독특했다. 마치 미술관에 온 게 아니라 어딘가 ‘낯선 공간’에 들어서는 기분.
환하게 비추는 조명도, 차가운 벽면도, 모든 게 조금씩 현실과 어긋난 느낌을 주는데… 그게 바로 이 전시의 매력 중 하나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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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맞닥뜨린 건, 텅 빈 다이빙 보드와 그 아래 존재하지 않는 수영장.
사람이 없는데, 누군가 방금까지 있었던 듯한 느낌.
그 감정의 잔상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작품은 ‘비어있음’을 보여주면서도 묘하게 감정을 건드린다.
외로움, 고립감, 그리고 동시에 어떤 익숙함.
이건 단순히 조형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야기를 담은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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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나왔던 병원 복도의 설치작도 강렬했다.
한쪽은 버려진 듯한 병상과 의자,
다른 쪽은 형광등 아래 깨끗하지만 불안한 분위기.
누구나 한 번쯤 마주한 적 있는 병원의 느낌인데,
그 안에 말 못 할 감정들이 시각적으로 응축돼 있었다.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섬세하고, 오래 머물자니 마음이 무거워지는 그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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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중 일부는 굉장히 유머러스했다.
예를 들면 벽에 머리 박고 있는 슈트를 입은 남성 조각,
혹은 나무에 기댄 채 모퉁이를 응시하고 있는 피규어 같은 존재들.
익숙한 듯 낯설고, 어딘가 불쌍하면서도 웃기고, 결국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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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전체는 하나의 큰 이야기처럼 연결돼 있었다.
작품들이 개별적으로도 충분히 강렬하지만,
전체 흐름을 따라가며 보면 ‘어떤 세계에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서로를 안아주었다’라는 제목처럼,
모든 작품이 우리 안의 공허함, 관계, 고립, 이해 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지막 공간에서는 정말 그 문장 하나가 묵직하게 와닿았다.
“우리는 서로를 안아주었다.”
물리적으로는 없지만, 감정적으로는 확실히 안아주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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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의 공간 활용도 정말 좋았다.
작품 배치도 여백의 미를 살리면서도 시선이 지루하지 않게 흘러가게 잘 구성돼 있었고,
관람 동선도 헷갈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사진 촬영도 가능해서, 기록 남기기에도 좋았다.
물론 작품마다 몰입이 필요해서 사진보다는 ‘눈으로 오래 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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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하자면, 이 전시는 ‘요즘 감정’을 시각적으로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단순히 멋진 설치물을 구경하는 걸 넘어서,
내 안의 공허함이나 불안 같은 것들이 가볍게 긁히고 쓰다듬어지는 경험.
혼자 가도 좋고, 친한 친구나 연인이랑 가도 괜찮지만,
조용히 감정 정리하고 싶을 때 혼자 보는 걸 더 추천하고 싶다.
마음이 조금 이상하게 편안해진다.
그리고 괜히, 누군가를 안아주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