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대발칸 반도 기행 31: 이탈리아 풍취가 물씬 느껴지는 트리에스테 탐방
【유럽 대발칸 반도 기행 31: 이탈리아 풍취가 물씬 느껴지는 트리에스테: 역사와 낭만이 어우러진 아드리아해의 보석】
이탈리아 북동부에 자리한 이 땅, 트리에스테는 그 독특한 매력으로 마치 두꺼운 역사책과도 같아,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세월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또 마치 흘러나오는 시 한 편처럼 곳곳에 낭만이 배어 있어, 내가 펼쳐보고 귀 기울이길 기다리고 있다. 아드리아해 북동쪽 해안, 이스트리아 반도 서북쪽, 트리에스테 만의 끝자락에 위치한 이 도시는 베네치아에서 서쪽으로 113km 떨어져 있다. 이 특별한 지리적 위치 덕분에 게르만, 라틴, 슬라브 문화가 교차하는 지점이 되었으며, 그만의 독보적인 도시 풍경을 만들어냈다.
트리에스테에 처음 도착하자마자, 공화국 광장(Piazza Unità d'Italia)의 웅장한 모습에 압도당했다. 바다를 마주한 이 광장은 도시의 심장부이자 유럽에서 가장 큰 해변 광장이다. 광장 주변을 둘러싼 아르누보와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들은 짙은 중유럽 풍취를 풍기며, 한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치하에서 누렸던 영화를 말해주는 듯하다. 아르누보 양식의 조각과 기둥, 초록색 탑이 눈에 띄는 시청 건물을 보니, 어느새 오스트리아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광장을 가로지르는 바닷바람은 이곳이 이탈리아의 해변 도시임을 다시금 상기시켜주었다. 광장에서는 사람들이 여유롭게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고, 거리 예술가들의 공연이 예술적 분위기를 더했다.
광장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4대강 분수(Fontana dei Quattro Continenti)'다. 정교한 조각과 독특한 디자인으로 광장의 중심이 된 이 분수는 중앙에 세계 4대륙을 상징하는 강을 형상화한 조각이 있다. 이는 한때 중요한 항구 도시로서 세계 각지와 긴밀히 연결되었음을 상징한다. 햇살 아래에서 반짝이는 물줄기가 분수에서 흘러나와 광장에 생동감을 더했다. 분수 옆에 서서 시원한 물보라를 느끼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대 이곳이 번성한 무역항이었을 때를 상상해보았다. 수많은 상선들이 오가고, 각국 상인들이 교류하며 문화가 융합했을 그 시절 말이다.
해안 도로를 따라 걸으면 항구가 보인다. 항구에는 고급 요트부터 소박한 어선까지 다양한 배들이 정박해 있다. 저 멀리 수평선에서는 갈매기들이 지저귀며 날아다닌다. 항구 주변에는 활기찬 어시장과 해산물 레스토랑이 자리해 신선한 해산물 냄새가 공기를 가득 채운다. 여기서 진정한 이탈리아 해산물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담백한 생선과 싱싱한 새우, 게를 현지 와인과 함께 즐기니 그 맛이 잊히지 않는다. 항구는 도시의 경제적 생명선일 뿐 아니라 사람들의 삶 속에 깊이 자리한 공간이다. 도시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수많은 이들의 꿈과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항구를 떠나 총독궁(Palazzo del Governo)으로 향했다. 당시 통치권을 상징하듯 웅장한 이 건물은 이탈리아의 낭만적 우아함과 중유럽 건축의 장중함이 조화를 이룬다. 복도와 방을 거닐며 귀족들이 지배하던 시대로 시간여행을 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권력과 영광의 향기가 느껴지는 이곳에서, 트리에스테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3대 군항 중 하나였으며 전쟁과 평화의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트리에스테에서 교회는 절대 놓칠 수 없는 명소다. 성 니콜라스 교회(Chiesa di San Nicolò)는 고딕 양식의 웅장한 건물로, 햇빛에 반짝이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종교의 신성함을 전한다. 트리에스테 성모 교회(Basilica di Santa Maria Maggiore)는 화려한 바로크 양식과 정교한 벽화로 유명하다. 성 유스티노 대성당(Cattedrale di San Giusto)은 로마네스크부터 고딕 양식까지 다양한 건축 양식이 혼합된 오랜 역사의 교회다.
트리에스테의 골목길을 걷다 보면 곳곳에서 역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오래된 건물들, 돌길, 모퉁이의 카페 모두가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대도시의 번잡함은 없지만 고요하면서도 깊이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 이 도시의 역사, 자연, 인문학적 분위기는 나를 매료시켰다. 여기서 다양한 문화의 융합과 충돌을 느끼며 이탈리아 특유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었다. 트리에스테는 마치 세월에 덮인 보석처럼 아드리아해 품에서 자신만의 빛을 발하며, 더 많은 이들이 찾아와 그 매력을 발견하기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