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충청남도 부여군 정림사지 입니다.
대한민국 충청남도 부여군 정림사지 입니다.
정림사지는 사비도성의 한 가운데 위치한 백제의 가장 중요한 사찰이다. 중문과 탑, 금당,강당이 남북 일직선상에 위치하며, 동서 회랑 및 건물지, 승방지 등이 확인되었다. 중심 사역의 규모는 동서 약 62m 남북 약 120m이다. 발로 결과 민무늬토기를 포함한 청동기시대 문화층,정림사 창건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삼국시대(백제) 문화충, 고려시대 문화층 등이 드러났다. 사찰이 건립되기 이전에는 공방 시설이 있었고, 고려시대에도 사찰의 명맥을 이어나갔다.
백제 성왕은 538년 봄에 지금의 부여인 사비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왕궁과 관 청을 비롯하여 사비도성 안을 중앙 • 동 • 서 • 남 • 북 등 5부로 나누고 그안에 거주지를 조성하는 도시 계획과 더불어 사찰이 건립 되었다. 백제가 사비성 으로 천도 하던 시기의 도성의 모습이 중국 사서 주서 백제전에는 "절과 탑이 매우 많다 라고 적혀 있다.
초석 기둥으로부터 전달되는 하중을 받아 기단부와 지반으로 전달하는 기초 석재를 초석이라고 한다. 초석은 땅을 다진 후 작은 들들을 견고하게 마련하여 을리는데 초석 윗면은 주좌라 하여 장식적인 요소가 가미되기도 한다. 정림사지에서는 네모난 방형과 등근 원형, 자연석 형태의 초석이 발견되었는데 초석의 형태에 따라 건물지의 모습이나 시기 등을 추측할 수 있다.
보부상은 상품을 등짐과 봇짐에 싸서 시장을 돌아다니며 상품을 팔던 상인 이다. 보부상이란 낱말은 보상과 부상의 합성어로 보상과 부상은 판매 방식이나 취급 물품으로 구별되었다. 판매 방식에서 보상은 이른바 봇짐장수로 보자기에 짐을 싸서 다니며 상품을 팔았다.
부상은 등짐장수'로 지게에 상품을 지고 다니며 팔았다. 취급 울퉁도 보상은 대개 부피가 작고 가벼우며 값이 나가는 문방구류, 장신구류, 직물류 등이고, 부상은 부피가 크고 무거운 솥. 농기구 등의 철물류, 목기류, 옹기류, 소금, 어물류 등이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보부상 유품은 지방의 보부상 임방에서 남겨 놓은 것으로 보부상 단체의 형성과 변천, 조직체계와 규칙, 역대 임원 등의 명단, 보부상 조직의 특권화와 관련 활동, 취급 물종과 지역 임방의 활동 권역, 재산상황, 보부상 단체의 의례와 풍속 등을 알려주고 있다. 이는 근대 이행기 상업단체와 상업사, 상업민속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로 역사적•학술적으로, 그리고 문화유산으로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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