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트베르펜｜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도시

안트베르펜은 발걸음을 자연스럽게 느리게 만드는 그런 도시입니다. 기차역은 마치 돌로 조각된 궁전 같고, 역을 나서면 공기 속에 커피 향과 오래된 시간의 냄새가 섞여 있습니다. 아무도 서두르지 않고, 모두가 마치 좋은 연극이나 한 줄기 바람을 기다리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성모 대성당은 시처럼 우뚝 서 있고, 내부의 루벤스 그림은 조용히 색채로 타오르고 있습니다. 저는 그림 앞에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종교 때문이 아니라, 단지 조용히 머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벨기에를 떠올리면 대부분 초콜릿, 맥주, 혹은 브뤼헤의 동화 같은 풍경을 먼저 생각하지만, 안트베르펜은 그런 귀여운 도시가 아닙니다. 이곳은 마치 조용하고 세련된 디자이너 같아서, 품위 있고 여유로운 태도와 정확한 안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 오기 전에는 쇼핑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이곳의 옷들은 정말 매력적입니다. 디자이너 브랜드, 미니멀한 재단, 절제된 감각, 그리고 파리나 암스테르담보다 친근한 가격대. 무엇보다 스타일이 멋지고 깔끔합니다. 이곳에서의 패션은 과장이 아니라 하나의 태도입니다. 거리의 사람들은 모두 '딱 적당히' 입고 있습니다. 과하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게요. 옷을 사고 난 후, 거리 모퉁이의 카페에 앉아 의자 다리 옆에 종이 가방을 두고, 햇살이 그 위를 비추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쇼핑의 전리품이 아니라, 여행이 남긴 작은 낭만처럼 느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