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허를 둘러보고 나니 마치 3천 년도 더 전 시대로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갑골문이 새겨진 거북 등껍질과 동물 뼈들이 전시장 안에 고요히 놓여 있었습니다. 비록 금이 간 흔적과 상징일 뿐이었지만, 마치 옛 선인들이 점을 치던 속삭임이 들리는 듯했습니다. 사목무정은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그 앞에 서서야 "무겁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청동기의 무늬는 사람들을 매료시켜 당시 장인들의 망치질과 끌질을 상상하게 했습니다.
공원의 유적 구덩이도 매우 특별했습니다. 다진 흙의 흔적과 정갈하게 배열된 기둥 구멍만 남아 있지만, 가이드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천천히 궁궐과 사찰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은허의 흙길을 걷다 보면, 바람이 불 때마다 흙내음과 세월의 냄새가 뒤섞인 역사의 냄새가 조금씩 느껴진다.
관광객도 적지 않지만, 그 유적지들을 걷다 보면 어딘가 고요한 기운이 느껴진다. 어쩌면 이곳에 숨겨진 이야기가 너무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갑골문의 글자 하나하나, 청동기의 문양 하나하나는 옛 선인들이 남긴 암호처럼, 후손들이 천천히 읽어내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곳을 떠나며 뒤를 돌아보았다. 저물어 가는 해 아래 은허 유적은 마치 3천 년의 비바람을 가슴속에 간직한 침묵의 노인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