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을 크루즈로 일주하다니, 누워서도 세계 일주가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다

매번 크루즈 갑판에 올라서면, 짭짤한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마다 마음속에서 "자유는 바다의 모습과 닮아 있구나."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수십 년 전 지구본을 보며 세계 일주를 꿈꾸던 그 소년은 아마도 크루즈가 가장 부드러운 방식으로 그의 꿈을 이루어주리라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남태평양의 파도는 항상 신비로운 초대를 담고 있다. 루비 프린세스호가 짙푸른 바다를 가르며 나아가면, 지도 위에서 바늘 끝만 한 섬나라들이 갑자기 수평선 위로 떠오르며 마치 신이 손수 뿌린 비취처럼 빛난다. 한때 닿을 수 없던 바누아투 화산섬과 피지의 일곱 빛깔 바다가 항로표에서 측정 가능한 위도와 경도로 변한다. 크루즈만의 '느린 여행' 철학 덕분에 각 목적지는 정성껏 포장된 선물처럼 다가온다—다음 새벽에 창밖에 어떤 신비로운 풍경이 펼쳐질지 절대 예측할 수 없다. 갑판은 떠다니는 유토피아다. 아침에는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요가를 하며 몸을 풀고, 정오에는 수영장 옆에서 재즈 음악과 칵테일 잔이 어우러져 나른한 리듬을 만든다. 가장 매력적인 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들이다: 난간에 기대어 알바트로스가 파도 위를 스치는 모습을 바라보고, 바닷바람에 생각이 흩날리는 구름처럼 흘러가게 둔다. 황혼이 바다와 하늘을 호박빛으로 물들일 때, 야외 영화관에 별빛이 켜지면 비로소 바다 자체가 결코 막을 내리지 않는 극장임을 깨닫게 된다. 이 움직이는 성 안에서 여행은 더 이상 체력을 소모하는 분주함이 아니라, 몰입하는 생명 경험이 된다.